2013. 3. 28. 18:17ㆍ이런저런생각들
한 참 지난 글입니다.
어떤 이가 작성한건지 자세한 내용은 없지만
돌아다니는 제목으로는 하청업체의 관계자로서 애플에 납품하는 회사 였던 모양입니다.
이 글이 씌어질 즈음엔 아이폰을 사용했겠네요.
그리고 지금은 놋투를 쓰고 있지요..
이 글과는 전효 무관하게... ^^;;;...
몇년전 부터 예견했었던 일이지만 애플의 아이폰이 앱스토어의 발표와 함께 연일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됨으로 인하여, 피처폰 생산량 세계 2위라는 기적을 일구어낸 삼성전자는 본의아니게도 폭풍처럼 몰아치는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의 또하나의 도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와서 그 충돌의 시작이 어디였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옴니아라는 제품에서 부터 애플 vs 삼성 이라는 대결구도는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구도는 ‘애플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한국엔 세계1위 전자업체 삼성이 있다’ 라는 애국적 무의식에 삼성전자가 언론플레이란 양념을 치면서 완성되게 됩니다.
어쨌든 이러한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삼성전자는 앞마당격인 한국시장에서 애플을 상대로 힘겨운 방어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햅틱 – 옴니아 – 갤럭시로 이어지는 삼성의 대항마(라 쓰고 경주마로 읽습니다)들을 접하고 난 후 제 주관적인 견해는, '삼성전자의 혁신의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의지는 혁신의 한가지 필요조건일 뿐.' 로 요약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삼성전자에 부족한 필요조건 중 하나로 '창의성을 배경으로 한 사용자편의성' 를 꼽을 것입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구요. 허나 이런 뻔한 얘기를 쓰기 위해 몇달만에 블로그 업데이트를 하는건 아닙니다. 서론은 이만 줄이구요.
제 블로그의 다른 글을 읽어보신 분은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전자부품을 대기업에 영업하여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바이어는 애플이고 그다음이 지금은 거래하지 않게 되었지만 삼성전자입니다. 하여 평소때도 종종 두 기업을 비교하곤 했었는데 때마침 두 기업의 대결구도가 이슈가 되는듯 하여 이 기회에 하청업체의 입장에서 바라본 두 기업이란 주제로 한꼭지 써볼까 합니다. 갑을병정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기업문화야 워낙 유명하니까 생략하고, 애플이란 기업이 거래처를 대하는 방식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 부품개발
엔지니어로부터 기술문의 email이 옵니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고 부품이 쓸 수 있다고 판단되면 간단한 회사등록절차(연락처, 직원수, 환경정책 정도)를 거친 후 부품승인 통보를 받습니다. 아직까지 회사에 애플직원이 실사 등의 형식으로 찾아온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도면을 제출할 필요도, 거래처 리스트를 제출할 필요도 없습니다. 애플이 원하는 양질의 제품을 원하는 만큼 만들어 낼 능력이 있다는 것만 보장하면 됩니다. 연간 수십억짜리 판매가 이렇게 간단하게 시작됩니다.
-. 단가정책
신모델의 경우, 구매담당자와 만나 단가를 협상합니다. 설비 신규투자가 필요한 경우 합리적으로 설명하면 투자비를 고려, 단가를 높게 제출해도 승인해 주는, 말 그대로 협상입니다. 제품의 견적가는 애플이 팍스콘 등의 1차업체에게 전달하는데, 애플 - 1차업체 - 부품공급자의 3자 모두 오픈되는 가격이기 때문에 1차업체가 애플을 핑계로 할인요청을 할 수 없으며, 만약 하는 경우에 고자질^^해도 보호받습니다.
그리고 매주 content refresh라는 내용의 설문메일이 자동계정에서 옵니다. 단가를 비롯, 제품이나 회사의 정보에 변화가 있을 때 적어내면 자동반영 됩니다. 변화가 없으면 회신 안해도 상관 없습니다. 수익성이 좋으니 품질도 신경쓰게 되고, 아 애플이랑 일하면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에 차후 비지니스가 욕심이 나고 그래서 알아서 단가를 낮춰 제출합니다.
-. 품질정책
중국의 1차업체가 미미한 불량을 확대하여 무상샘플을 요청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합니다. 애플측에서도 이 현상은 자기네들이 컨트롤이 안되니 무조건 승락하지 말고 원칙에 의거하여 대응할 것과, 애플에서는 최대한 중립적 입장으로 부품업체의 불량을 바라본다는 사실은 말해줍니다. 중국업체만 잘 요리하면 됩니다^^
-. 납기정책
매주 향후 6개월치 forecast(구매예정수량)가 1차업체-부품업체 할것없이 동시에 업데이트됩니다. forecast 수량을 발주로 간주하지 말것이란 꼬리표는 붙지만, 9년경험상 그 수량이 미달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만약 감산할 것 같으면 3개월전에 미리 연락해서 감산해서 미안한데 문제되면 연락달라고 정중한 메일이 옵니다. 어쨌든 3개월 물량은 항상 준수되기에 큰 문제 없이 운용 가능합니다. 심지어는 forecast 수량만큼 3개월치 미리 생산해 놓고 2개월 전직원 유급휴가 써본적도 있습니다.
국내 제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라면 위와 같은 애플의 정책을 접하고는 과장이 심하구나.. 혹은 천국일세.. 라는 정도의 반응이 나올 것입니다. 제 경우는 첫 대기업 고객이 애플이었기 때문에 원래 이런거겠지 했습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과 거래를 해 보니 저또한 천국에서 지옥으로 온 기분이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휴대폰은 울리고 마음속에서 안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항상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이 씨가 되었는지 어느날 갑자기 수억원어치의 재고를 남겨두고 18개월간의 지옥체험은 종료 되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애플의 정책이 아주 특별한 케이스는 아닙니다. 애플 외에도 실리콘밸리의 미국업체들에 영업하여 판매를 해 보면 기본적인 마인드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즉, 공급자를 한국처럼 '을'로 보는 것이 아닌, 내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파트너로 간주하며, 파트너의 손실은 곧 나의 손실로 돌아온다는 원칙, 그리고 파트너가 기분좋게 일해야 좋은 제품을 나에게 공급할 수 있다는 원칙이 근본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글에서 쓰고자 하는 핵심 또한 이것입니다. 욕심을 줄이고 이익을 공유하여 시스템 내의 개체들이 건강하게 돌아가도록 설정할 수 있는 능력, 이러한 능력이 바로 저 유명한 에코시스템인 앱스토어를 만들어 내는 근본이 되며, 열심히 방어전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가 빼앗긴 앞마당을 되찾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요소 중 하나라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삼성전자와 애플은 태생과 DNA가 다른 기업입니다. 무조건 애플의 방식이 삼성전자에 약이 된다라고 볼수는 없지요. 다만 이건희씨가 지금이 진짜 위기라는 말과 함께 돌아온 것은 분명 지금의 삼성전자의 DNA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며, 변화의 필연성을 느꼈다면 중소기업의 존재란 대기업에게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숙고하여 완제품산업과 부품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1등기업의 용기있고 현명한 변화를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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